사랑니를 뽑다.
꽤 오랜 시간을 어금니 옆에서 공생했던 사랑니를 이주에 걸쳐서 뽑았다. 생니를 뺀다는 사실이 너무 싫었고, 동네치과에 갈때 사랑니 굳이 뽑지 않아도 된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서 나는 오랜시간을 미뤄왔다.
작년에 유난히도 사랑니 쪽 잇몸에 염증이 심했다. 어쩌다 사랑니가 헤집어 놓은 잇몸 사이로 음식물이 끼면, 한 일주일은 염증이 생겨 얼굴이 퉁퉁 부었다.
동네치과에 가서 치아 상태를 점검했는데, 대학병원 가서 사랑니를 뽑으라는 조언을 들었다.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인제 더이상 미룰수 없겠다 싶어 토요일 동네에 있는 대학치과병원 예약했다.
절차와 대기가 많았다. 교수를 선택하면, 예약 대기시간도 2시간 생각해야 되고, 예약 후에 발치도 3~6개월이 걸린다고 했다. 수련의를 선택하면, 예약 대기시간 30분에 예약 후 발치도 1~2개월이 걸린다고 했다.
사랑니 발치에 겁이 나서, 그래도 대학병원까지 갔는데, 교수에게 시술받아야되지 않겠냐 싶어, 토요일 당일까지도 교수에게 시술 받겠다고 예약했었다. 그런데, 막상 가서 예약 대기시간이 한없이 늘어지는걸 확인하면서 다음 일정에 차질이 생길 수 없어 수련의로 급 변경하였다.
수련의를 보니 신뢰가 잘 생기지 않았다. 나보다 어려보이는, 내 치아 상태를 시트에 작성하는데도, 왼쪽, 오른쪽을 반대로 적는 그 친구를 보니 내가 십분일찍 가려다 십년 일찍 간다는 슬로건이 생각났다. 시트를 작성하고 나서 상담은 또 그보다 선배격인 수련의가 했다. 수술이 필요해보인다고, 예약날짜를 잡았고 2개월 뒤로 잡혔다. 방학이라 학생들이 예약을 꽉 잡아놨다고.
생각해보면, 엄마 손에 이끌려 어쩔수없이 했던 치과진료를 제외하고, 내가 자발적으로 큰 치과 수술을 받는 결정을 한거는 처음이었다. 지금 순간 좀 괜찮더라도 언젠가 다시 염증을 일으킬 사랑니를 떠나보내는 결정은 당장은 아프지만, 더 오랜 기간 평안을 주겠지 하며, 월요일 월차와 다음주 월요일 반차까지 할애하며 수술 날짜를 잡았다.
사랑니는 왼쪽 위아래로 2개가 있고, 오른쪽 아래 1개가 있었다. 총 3개의 사랑니를 뽑기로 했고, 지난주에 2개 이번주에 1개를 뽑았다. 사랑니를 뽑는 긴장감과 아픔은 꽤 컸다. 위 사랑니를 뽑을때는 속 시원하게 뽑혔지만, 왼쪽 아랫니 사랑니를 뽑을때 시술 시간이 1시간 정도 걸렸다.
나는 마취하는 의사분만 보고 들어갔고, 실제 시술할 의사가 누군지는 보지 못했는데, 마취하고 시술할 준비가 끝난 후 들어온 수련의의 얼굴을 나는 보지 못했다. 나는 그의 목소리 만으로 그를 신뢰할지 말지 결정해야 했고, 초조하게 손가락을 손바닥에 긁으며, 수련의의 실력을 가늠했다.
수련의는 여성이었는데, 예약상담했던 수련의와 달랐다. 수련의는 후배 수련의에게 "석션"을 부드럽게 요청하는 것 외에는 별다른 말을 없었다. 그러나 그 부드러운 말투에서 여유가 느껴져서 나는 그 수련의를 전폭적으로 신뢰하기로 했다.
드릴뚫는 소리, 치아가 뿌지직 거리는 소리가 들렸음에도 이 수술은 멈추지가 않았다. 그러다 여성 수련의가 갸우뚱하며 내는 소리와 처음에는 나를 고객님이라고 부르다가 어느 순간 환자분이라고 부르는 소리를 들으면서 이 수술이 어렵게 흘러간다는 것을 직감했다. 여성 수련의는 나에게 환자분 뿌리가 기형이라 잘 뽑히지 않는다고 좀 더 해보겠다고 이야기하며 나를 불안케 했다.
턱이 빠지는 것처럼 도대체 어떤 도구로 하는지 모르겠는데, 치아를 잡고 턱에서 뽑아내는 듯한 행위를 여러번 하다가 자리를 바꿔서 하다가 꽤 오랜 시간이 지나서 나에게 수고했다고 다 끝났다고 격려해줬다. 이제 끝이구나, 보통 사랑니 뽑는 수술보다 어려운 거였구나 란 생각과 수련의의 격려에 갑자기 눈물에 핑 돌았다.
밖에선 아내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냥 단지 사랑니 뽑는 수술인데, 이게 이렇게 힘들다니 하며, 얼음팩을 하며 약을 받아서 집으로 왔다.
다음주 월요일 두번째 수술에서는 이미 고통을 경험해봤기에 수술을 임하는 마음이 더 불편하고 무서웠다. 들어가서 만난 마취하는 분이 달랐고, 수술하는 분도 다를수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술 준비를 마치고 들어온 수련의는 남성이었다.
그는 나에게 오른쪽 사랑니 사진을 보니 고생좀 하겠다고 말했다. 그럴 수 없다고 생각해서 지난주에 왼쪽 사랑니 뿌리가 기형이라고 이야기해줬었다고 왼쪽 사진을 잘못보고 이야기한거 아니냐고 물어봤다. 그 수련의는 아 오른쪽도 뿌리가 기형이라고 갈고리 형상의 뿌리여서 뽑는 과정에서 수술이 어려울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순간적으로 왜 동네치과에서 사랑니 발치를 추천하지 않고 그냥 뽑지 말라고 했던 여러 치과의사들이 생각났다. 뽑기가 쉽지 않으니 괜히 고생하지 말고 같이 공생하라는 뜻이었던 것 같다. 한때 꿈이 치과의사였던 고등학교 시절이 생각났다. 나는 피를 볼 수 없는 사람이어서 치과의사가 못된것이 잘된거라고 생각했다.
수련의는 나를 계속 안심시키며 동시에 후배 수련의에게 이 뿌리가 얼마나 특이한지 설명해주었자. 초 긍정적인 마인드로 위 사랑니를 안뽑아도 된다는 것에 위안을 삼자며 수술 시작시간을 알려주며 자기가 30분 내에 완료해보겠다고 시키지도 않은 미션을 만들었다.
이 수련의는 30분 정도 걸려서 갈고리 형태의 뿌리를 가진 사랑니를 뽑았다. 나보고 환자가 견디지 못하면, 이런 수술을 하기도 어렵다며, 내가 잘 견뎠다고 격려했다. 두번째 수술 후에는 그래도 한번 해봤다고 여유가 좀 생겼는지 후배 수련의에게 손짓발짓으로 뽑은 사랑니를 보여달라고 해서 봤다. 뿌리는 보이지 않았고 4조각 난 사랑니 크기가 커서 4개 이 처럼 보였다.
사랑니가 이제야 내 삶에서 뽑혔다. 끊임없는 염증을 주던 녀석이지만, 뽑기엔 당최 감당하기가 두려웠던 녀석이었는데 이제야 뽑았고, 지금은 엄청 아프지만, 아물면 전보다 훨씬 나아질거란 마음이 있어 견디기가 수월하다.